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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대학의 상대평가

水晶 2024. 8. 5. 12:05

대학의 주인은 교육부가 아닌 학생

21세기를 맞아 창의성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 사회는 복잡한 문제 해결과 대안 마련을 위해 늘 창의적인 인재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사회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창의적 인재의 육성을 강조하는 기능론적 관점을 어필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 창의성과 개인의 행복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모든 단계의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 함양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대학에서 소규모 토의수업이나 문제기반학습 등과 같이 학생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양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 대한민국 소재의 대학들은 교육부 평가에 얽매어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상대평가를 고집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보통 창의성은 독창성과 유용성의 조합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소질과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적으로 새롭고 유용하다고 정의되는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하지만 창조물이 늘 새롭고 유용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독창적이고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야 말로 대학이 학생들에게 가장 독려해야 할 부분이라 확신한다. 모든 학생들은 잠재적인 창의성을 가지고 있고, 대학은 학생들이 의지를 가지고 기꺼운 마음으로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해 가기를 바라고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우리는 독창적이고 유용한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협동과 협업이 언제나 치명적일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Lone Genius Myth’(독자적인 천재의 신화)라는 말이 있다. 아인슈타인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들이 홀로세상을 뒤흔든 아이디어를 고안했다는 믿음은 신화에 불과할 정도로, 반짝이는 아이디어 뒤에는 늘 협업이 존재했다는 이야기이다. 다양한 배경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문제해결과 대안을 위해 몰입하는 순간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부터 대안들을 찾아내고 해결안을 최종 검토하기까지 참여자들의 창의성은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내일의 지성을 키우는 대학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협동과 협업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낌없이 지원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대부분 대학들의 고집스러운 상대평가 방침은 학생들로 하여금 더 나은 성적을 위해 학우를 극복하고 이겨야 할 경쟁자로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협력은 차치하고 부정행위와 같은 비윤리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행위까지 감행하게 만들곤 한다.

 

대학들마다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학사구조와 교육과정 개편을 수시로 단행하고 있지만 도전을 망설이게 하고, 학우들과 비교해 스스로를 평가하고, 평가 당하는 구조 속에서 창의융합형 인재의 양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학습 동기를 높인다는 상대평가의 취지를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지만 다수의 경험적 연구들이 성과를 강조하는 상대평가보다 숙련 과정에 초점을 두는 절대평가가 학생들의 창의성 발현에 적합한 방식임을 증명하고 있다. 대학이 생존해야 할 이유가 사회에 공헌하는 창의적이고 행복한 인재의 양성이라면, 더 이상 학생들을 상대평가라는 구조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