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왕실 모욕죄가 있는 태국 본문
국왕의 팬, Fang
20대 중반이었는데도 '팡'은 고등학생처럼 어려 보였다.
본명은 티안팁이었지만 별명인 '팡'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중국계 태국인이어서 외모는 태국인보다는 중국인에 가까웠는데 갸름한 달걀형 얼굴에 단아한 이목구비를 가진 친구였다.
얼마나 명석한지 대학은 태국 명문대에서 전액 장학금으로 마친 데다 석사과정은 정부 장학생으로 스위스에서 했고 박사과정은 태국의 임용된 대학에서 '교원 역량 증진' 차원에서 해마다 한 명씩 선발해 박사학위 과정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에 뽑혀 유학을 온 거였다.
이쯤 되면 도도한 아가씨가 상상되겠지만 도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소탈하기 그지없는 친구였다.
거기다 얼마나 효녀인지 태국 대학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를 알뜰하게 모아서 한 달에 한 번 부모님께 송금을 했다.
아버지께서 태국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셨기 때문에 팡이 소녀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마음은 또 얼마나 건강한지 지도교수의 어이없는 방치와 모욕을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털어내고 (영국에도 쓰레기 교수는 존재한다) 흔들림 없이 연구에 매진했다.
그런 팡에게 다소 의외의 구석이 있었는데 바로 태국 국왕에 대한 그녀의 깊은 애정이었다.
팡에게 태국 왕실은 그녀가 살아있는 이유이자 미래의 희망이었다.
태국은 군주제가 7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나라이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태국이 한 번도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국이 열강들을 대적할 만큼 강했다기보다 열강들이 일종의 완충지대로 태국을 남겨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태국의 실세인 군부가 왕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왕이었던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이 70년이 넘는 재임 기간 동안 태국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행실로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긴 했다.
그렇다고 군부가 국왕을 팡처럼 존경하고 사랑해 보호하는 것일까?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태국 시민들의 눈을 가려 군부의 독재를 정당화시켜 줄 방패가 필요했을 뿐이다.
입헌군주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누구든 군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구속이나 퇴출되는데 그 사유가 대부분 '왕실 모독'이다.
태국은 형법에 '왕실 모욕죄'라는 게 있어 왕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업적을 모독하면 형을 살아야 한다.
짐작하겠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죄목이다.
최근엔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해 제1당이 된 전진당(MFP)이 바로 이 죄목으로 해산되는 사건이 있었다.
전진당이 군주제 개혁을 공약으로 걸었다는 게 이유가 됐다.
군주제 개혁은 정치체제의 민주화이자 군부를 정치 무대에서 내려보내는 일까지 의미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부디 태국 군부의 마지막 몸부림이길 기원한다.
다행히 팡도 현왕은 선왕만큼 애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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