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얼마 없다는 것
지인에게 안부를 물으니 이사를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은행에서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마음을 졸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미래를 도모하던 시절 학생 대출을 알아보던 때가 기억이 났습니다.
이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한 학기를 휴학해 버렸죠.
사실 돈이 있으면 참 많은 걸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학업을 마칠 수 있고, 가족들이 조금 더 쾌적한 집에서 살 수 있고, 아픈 자녀의 병을 고칠 수 있고, 조금 사치스럽게는 편안하게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채울 수 있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이 수중에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니고요.
근데 고 박완서님의 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 돈이 얼마 없다는 게 활력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을 읽게 됐습니다.
여자 주인공 문경이 아들의 양육권을 두고 생부와 조정 절차를 끝내고 나오면서 조정위원과 나눈 대화였는데 본인은 돈은 얼마 없지만 아이를 충분히 행복하게 키울 자신이 있다며 하소연합니다.
그러자 조정위원이 돈이 얼마 없다는 소리가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웃습니다.
문경이 자신을 놀릴 셈이냐고 서운해하니까 조정위원은 자라면서 어머니한테 가장 많이 듣던 소리였다며 '돈이 얼마 없는 상태'라는 게 형제간에 우애, 절제, 근면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상태였는지 육남매였던 형제자매가 다 쓸 만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의 자녀들은 아쉬운 것 없이 유복하게 자라고 있어서 돈이 얼마 없을 때의 활력을 모른다며 심지어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고 덧붙이죠.
잠시 갸웃거리던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몹시 궁핍한 삶은 활력과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지만 돈이 얼마 없는 상태는 충분히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