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초콜릿
트리하우스 카페
"미리암, 학교 정문 앞에 있는 조그만 카페 가 본 적 있어?"
오전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는 길에 절친 뮤게가 물었다.
"학교 앞에 카페가 있어?"
"나도 어제 처음 가봤는데 수프가 끝내 줘.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곳이래. 같이 가서 점심 먹을래?"
"이따 저녁에 가는 건 어때? 나 도서관에 들려야 하거든."
"아, 진짜? 근데 카페가 점심시간에만 운영을 해. 가까우니까 후딱 먹고 가면 안 될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 없어 뮤게를 따라나섰다.

카페는 실제로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는데 벽돌로 지어진 자그마한 크기의 건물이었다. 입구 오른쪽으로 나무 그림과 함께 "Treehouse Cafe"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규모는 작았지만 꽃그림 패턴의 커튼과 테이블보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고 테이블마다 미니 유리병에 들꽃까지 꽂아둔 정성에 미소가 지어졌다.
뮤게와 난 '오늘의 수프'인 아보카도 수프와 비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맛은 정말 훌륭했다. 부드럽고 고소한 아보카도 수프와 신선한 야채가 가득 들어간 샌드위치의 조화는 실로 천상의 맛이었다.
뮤게와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자 서빙을 하고 있던 학생이 웃으며 다가왔다.
'Nina'라고 적힌 이름표를 달고 있던 학생은 지하에 공정무역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으니 식사를 마치면 구경도 해보라고 안내했다.
니나는 카페에서 발생하는 수익 중 재료 구입비 외에 나머지는 모두 아프리카에 사는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쓰인다는 말까지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제야 카페가 왜 학생들의 자원봉사에 의지해 점심시간에만 운영되는지 이해가 되면서 샌드위치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트리하우스 카페 지하에는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잘 팔리는 인기 품목은 초콜릿이었다.
가격이 결코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취지에 공감한 학생들은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코코아 농가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기업의 초콜릿을 먹겠다는 거였다.
사실 초콜릿 산업 내의 노동력 착취 및 환경 침해 사례는 20년 전부터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초콜릿 값은 꾸준히 상승했지만 정작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의 가격은 지난 50년 동안 거의 변동이 없다 보니 세계 대부분의 코코아가 생산되는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선 수백만의 농가가 여전히 하루 1달러 이하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초콜릿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코코아 농가의 수익은 전혀 늘지 않았고, 코코아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한 다국적 기업들의 탐욕 속에 광대한 열대우림만 파괴되어 갔다.
가장 가슴 아픈 건 많은 아이들이 학교 대신 코코아 농장으로 내몰려 강제노동에 시달려 왔다는 점이다.
비정부 기구와 환경단체들의 비판에 못 이겨 굵직한 초콜릿 가공업체와 제조사들이 지난 2000년, ‘세계 코코아 재단(World Cocoa Foundation)’을 결성해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코코아 산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질적 진전은 미미하다고 업계 감시 단체들은 입을 모은다.
불공정한 생산/공급망 체계가 너무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바람에 소위 '착한' 브랜드라고 알려진 몇 안 되는 제품들조차도 실제로는 기존의 불공정한 구조에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정무역 인증 초콜릿을 구매하는 작은 실천은 여전히 의미 있고 필요하다.
당장 코코아 농가의 수입을 조금이나마 늘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농부들이 주도권을 갖는 미래를 여는 데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소규모 농가들이 모여 설립하는 협동조합에 있는데 이는 중간착취 단계를 거치지 않고 농가들이 직접 수출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유통망을 구축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협동조합 모델은 생산자들의 자율성과 협상력을 높이고, 소비자에게는 보다 윤리적인 선택지를 제공하는 실질적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달콤한 초콜릿이 당긴다면 더 많은 코코아 농가들에게 협동조합의 꿈을 이뤄 줄 공정무역 초콜릿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