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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클래스 본문
빨강머리 앤의 정원을 만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나는 '꽃동산 미술학원'이라는 곳을 다녔다.
월 7만원(그 당시 '빵빠레' 아이스크림이 500원이었다)이나 하는 학원비가 부담스러우셨을 텐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한 어머니의 배려였다.
5학년 말 즈음 미술학원 원장으로부터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예원중 시험을 보려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야 하는데요.."
어머니께선 내가 미술을 전공하는 걸 원치 않으셨지만 그래도 내 의사를 물어봐 주셨다.
나는 예원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어린 마음에도 미술이 좋긴 했지만 직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좋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림 그리기는 내 취미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정규수업에 미술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욕구가 해소가 되었다.
하지만 스무 살 이후, 내 삶에서 그림 그리는 시간을 따로 내기는 어려웠다.
그저 인터넷에서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림 그리기는 은퇴 후에나 다시 도전해 볼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박미나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그림 그리기에 대한 욕구가 폭발해 버렸다.
수채화에도 여러 기법이 있는지 여리여리한 꽃들을 맑디 맑게 표현한 박미나 작가의 작품들은 나를 '꽃동산 미술학원'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곳엔 간혹 원장의 친구라는 사람이 놀러 와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내가 그리는 수채화와는 수준이 달랐다.
두세 번의 터치로 물을 한껏 머금은 붉은 장미가 하얀 도화지에 나타나곤 했다.
박미나 작가의 작품들은 보다 정교한 느낌이었지만 역시나 같은 계열의 수채화였다.
박미나 작가를 검색해보니 수채화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길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을 했다.
그렇게 신청을 하고 난 뒤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안녕하세요, 박미나 작가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읽으면서 순간 '누구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림에 대한 욕구는 까맣게 잊은 채 일상을 또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해놓고...
수채화 클래스가 운영되는 곳은 마곡역이어서 나는 집에서 7시 20분 버스로 출발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이토록 쉬운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가뿐하게 일어나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이런, 설레었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러 가는 길은 그렇게 내 일상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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