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일본 2024 총선의 의미 본문
박사과정 시절 운 좋게 일본 외무성 국제문제연구소 장학생으로 뽑혀 3개월 동안 방문연구원으로 일본에 머문 적이 있는데 내 인생의 황금기라 여겨질 정도로 행복했다 (심지어 박사논문 감사의 글에도 그렇게 적었다).
다른 것보다 일본인들의 개인주의 문화가 뭐든 혼자 하는 게 편한 나랑 찰떡같이 잘 맞았다.
특히 서로 간에 깍듯하게 예의를 지켜주는 문화 덕분에 실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가 거의 0에 수렴했던 시절이었다.
다만 조금 의아하게 여겨졌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당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산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바람에 WTO에 제소까지 되던 시절이었는데 웬일인지 일본 마켓에서는 후쿠시마산 농산물이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더 놀라웠던 건 일본 시민들이 후쿠시마산 식품들을 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대한민국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청와대에 가서 항의를 했을 것이다. "우리 애들에게 피폭된 농산물을 먹일 수 없다!!"라고 외치면서.
차후에 알게 되었다. 일본 시민들은 정부 정책에 대항해 제대로 싸워 본 역사가 거의 없다는 걸.. 그런 면에서 여전히 중세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말이다.
일본은 자민당의 나라'였다'.
민주당에게 잠깐 자리를 내어준 적은 있지만 1955년부터 쭈~욱 일본 정치를 독식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던 자민당이 최근 총선에서 아주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다.
일본 시민들이 꿈틀대기 시작한 걸까?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다 (수업 자료로 쓸 것도 아닌데! 와아, 스고이~ㅎ)
Japan Times는우선 총선에 대한 이시바 총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라고 토닥여준다. 자민당 후보들을 위해 그는 8만 킬로가 넘는 거리를 다니며 지원 유세를 했단다.
문제의 시작은 오히려 내각 구성에 있었다고 지적하는데, 이시바 정부의 내각 구성은 일본 시민들에게 '그 나물에 그 밥'을 상기시켰다고 설명한다 (대다수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무파벌' 내각 구성이라며 이례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게 바로 새로운 정부, 모던한 정부를 약속했던 이시바에게 일본 시민들이 실망한 첫 번째 포인트!
(이시바가 자민당 내에서는 정치 개혁을 외치던 인물이라 그만큼 실망도 컸던 듯하다.)
거기다 이시바는 갑자기 하원을 해산하고 조기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한다.
입지를 다지기 위한 시도였겠지만 일본 시민들에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시바'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되는 꼴이 되고 마는데, 그 이유는 하원을 해산해야 할 경우 반드시 야당과 논의해서 결정하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위원회 소집을 생략하고 조기 선거를 통해 자민당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모습에 다시 한번 실망!
(보통 일본은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면 예산위원회를 소집해 전반적인 국가 운영을 논의한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비자금 스캔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에 돌입한 점이다.
스캔들에 연루된 일부 의원들에게 공식 공천을 주진 않았지만 공천을 받지 못한 의원들이 관할하는 지부에 선거 자금을 배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의 공약이었던 '정치 개혁'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시바의 성급함 덕분에 일본은 한층 민주주의다운 정당 체제를 이루게 된 것 같아 반갑다.
물론 정책 추진에 어려움은 있겠지만 일당독재체제를 벗어난 것 자체가 어딘가!
일본 시민들에게 이웃 국가의 시민으로서 축하해주고 싶다. 자, 이제 반생태적 정부 정책에 대한 시위도 감바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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