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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불평등 본문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
온라인 북클럽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라는 책이 올라왔길래 단숨에 읽었다.
요지는 기술의 진보(혁신)가 언제나 모두의 삶을 개선시키고 풍요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열악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가 새롭게 맞이하고 있는 AI 혁명에서 동일한 절차를 밟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굵직한 기술의 진보와 소득불평등 간의 관계가 어떤 양상을 보여왔는지 설명하길래 그래프를 찾아봤다 (난 한눈에 들어오는 도표가 좋다).
저자들의 말대로 2차 세계대전(WWII) 이후 경제선진국들의 소득불평등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3차 산업혁명으로 자동화가 급속도로 파급되는 가운데에도 기술의 진보가 사회 전반에 공정하게 기여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이 우연이 아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저항하고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 소득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이유 또한 노동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저자들은 기술의 혁신이 소수 자본가와 대기업의 주머니를 채우는 게 아닌 모두를 위한 진보가 되기 위해선 사회적/정치적 선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선택이란 다름 아닌 노동자들이 연대해 혁신의 속도를 조절하는 길항 세력(countervailing forces)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또 기술 혁신의 열매(이윤)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
여기서 또 한 가지 주지해야 할 사실은 일반적으로 사회공동체의 99%가 노동자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소위 대학을 나온 고급 인력이니까 노동자가 아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연봉으로 몇 십억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면 말이다.
AI 혁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동자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과 정부가 지원책과 대안을 마련하도록 사회공동체의 99%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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