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방글라데시 7월 혁명 본문
토히드 교수님
"히익! 보고서에 참고문헌이 130개야? 도대체 이걸 언제 다 읽은 거야?"
"이 정도는 기본이지, 미리암. 하하"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토히드는 방글라데시 출신이었는데 학우들 사이에선 교수님이라고 불렸다.
닥카(Dahka) 대학에서 교수로 이미 10년을 재직하고 유학을 온 친구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기말 보고서를 석사논문 수준으로 작성해 버리는 넘사벽 실력과 성실함 때문이기도 했다.
토히드는 그의 조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방글라데시가 1971년 독립한 시점에서 더 이상의 발전 없이 정체되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토히드의 말에 따르면 독립 영웅이었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Sheikh Mujibur Rahman)이 국부로 추대를 받으면서 그의 딸이자 (당시)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의 반민주적 행보마저도 "독립 전쟁의 계승자"라는 프레임 속에서 정당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히드는 라흐만과 하시나가 이끄는 정당, 아와미 연맹 또한 독립 전쟁의 유산을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권력 유지를 위해 극단적 편 가르기와 배타적 정치 문화를 양산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런 토히드에게 나는 소위 경제 선진국이라는 한국도 별 다르지 않다며 어쭙잖은 위로를 건넸다.
지난 2024년 7월, 방글라데시에 대대적인 학생 봉기가 있었다.
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사건은 공무원 채용에 독립 유공자를 우대하는 쿼터제의 부활이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나 토히드가 탄식해마지 않던 하시나 정부의 권위적이다 못해 독재에 가까웠던 통치 때문이었다.
쿼터제 부활에 항의하며 거리에 나선 학생들을 향해 하시나 정부는 경찰과 아와미 연맹 산하 무장조직인 방글라데시 찻트라 연맹(Bangladesh Chhatra League)을 투입해 최루탄과 실탄으로 시민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하시나 총리는 사임을 하고 인도로 도피해 버렸다.
한달 동안 이어진 시위에서 하시나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1,5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숨지고 수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야말로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얻어낸 민주화였다.
현재 방글라데시는 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가 임시정부 수석 고문직을 맡아 이끌고 있다. 유누스는 2025년 말에서 2026년 초 사이에 공정한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갱 범죄가 만연하고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다카 거리의 치안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임시정부가 과연 평화롭게 총선을 진행하고 권력 이양까지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거기다 인도에 피신해 있는 하시나 전 총리가 공개적으로 유누스 임시정부가 방글라데시를 망치고 있다며 맹렬히 공격하는가 하면 지지자들을 선동까지 하고 있어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참, 어딜 가나 비슷한 류의 사람이 꼭 있다).
부디 방글라데시가 무탈하게 선거를 치르고 제2의 독립을 완성해 가길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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