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영국의 브렉시트 본문
영국 신사 토마스
브래드포드 대학 학생회관이라 할 수 있는 에이트리움 1층엔 국제학생들을 위한 아지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알게 된 이후 나는 주로 점심시간에 에이트리움 2층 카페테리아에서 오믈렛을 사가지고 가서 혼밥을 하는 장소로 애용했다.
그날도 늘 먹던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탁자 맞은편에 정장을 깔끔하게 갖춰 입은 남성이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영화 킹스맨에나 나올 법한 차림을 하고 있어서 학생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오믈렛이 담긴 용기의 뚜껑을 열자 남자가 특유의 영국식 발음으로 "That looks proper good!" 라며 말을 건네왔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 펠릭스 크라이튼.
스물여덟 살이었지만 대학 입학이 늦어져 이제 2학년이라고 했다.
토마스는 점심시간에 와서 혼밥을 하고 있던 나를 여러 번 봤다고 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적 중국에서 몇 년 살기도 했던 터라 내가 어디서 왔을지 궁금했다고 했다.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건네왔지만 토마스는 무척이나 예의 바른 전형적인 영국 신사였다.
다만 본인이 영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너무 커서 영국이 유럽연합에 속해 있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토마스는 '탈퇴'에 한 표를 던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날 토마스가 던진 한 표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시트(Brexit)'에 기여한 셈이 됐는데, 국민투표 결과 '탈퇴'가 '잔류'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면서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 탈퇴를 이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사실 당시 수상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 및 보수당의 다수 의원들은 유럽연합 탈퇴라는 투표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시민들이 유럽연합 잔류를 선택할 거라 확신하고 베팅을 했던 것뿐이다.
캐머런에게 브렉시트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열렬한 유럽 통합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캐머런은 영국이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서 누리는 이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다만,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잔류'라는 결과를 손에 쥐게 되면 보수당 내 유럽 회의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무력화시켜 보수당의 결속을 강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의 도박은 영국을 소위 turmoil,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집어넣는 꼴이 되고 만다.
유럽연합과 탈퇴 협상을 마무리할 때까지 수년 동안 영국은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했고 이는 투자와 고용 감소를 초래했다.
협상이 마무리되었다고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최근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따르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는 브렉시트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로 다른 경제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를 대략 5% 정도 후퇴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롭게 드나들던 유럽 시장에 철조망이 쳐지고 자물쇠가 잠기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역시나 영국의 소규모 기업들이었다. 많은 기업들이 수출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했는데 새로운 무역 협정에 따른 세관과 규제 요건이 지나치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영국 시민들의 과반수가 브렉시트를 원했던 이유로 Indentity Politics, 정체성 정치 - 영국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고 경제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갈망이 종종 거론되지만, 역시나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 내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이었다는 생각이다.
국가 재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영국 정치인들은 그 책임을 이민자들과 유럽연합에 전가했고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그야말로 가짜뉴스를 제대로 홍보해 준 셈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폐해는 고스란히 영국 시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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