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결핍이 곧 은혜 본문
새로운 마음으로 작성해 제출했던 논문의 리뷰 메일을 받았다.
결과는 major revision.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저널 편집장을 하고 있어도 모자랄 나이에 논문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힘이 빠졌다..
리뷰어들의 코멘트도 대충 읽고 덮어버렸다. 그냥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잠자리에 너무 일찍 드는 바람에 새벽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기도할 요량으로 일어나 앉았다.
아버님께서 전립선 암 진단을 받으셔서 마음이 복잡할 제니 언니와 가족들
최근에 중보 기도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시는 호주에 있는 다정언니
유방암 치료제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중학교 동창 현정이
백혈병 투병 중인 아들을 간호하느라 늘 긴장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지선이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간다는 조카
모두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 결핍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길 소망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멈칫했다.
내 입으로 내게 필요한 말씀을 주시다니..
난 도피하다시피 떠난 그 머나먼 미국 땅에서 예수를 만났다. 만약 내가 원하던 대학에 붙어서 유학길에 오르지 않았다면 과연 예수를 믿게 됐을까? 나 잘난 맛에 살고 있던 나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부모라는 울타리 없이 홀로 지내야 했던 가운데 내 영혼에 각인되어 있던 신에 대한 의존성이 더 뚜렷하게 발현됐을 터이다.
그렇게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내려갈 때마다,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마다 난 하나님께 더욱더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여전히 버리지 못한, 신과 떨어져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은 나의 자아 때문에 그 과정이 행복하다고 선뜻 말하긴 어렵지만 언제든 달려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adjutor(조력자)이자 salvator(구원자)가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안도감을 준다.
나의 결핍을 은혜로 고백하고 싶다.
내 문제를 놓고 기도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major revision이라는 논문 리뷰 결과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지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놀랍다.
그럼에도 수정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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