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이루지 못한 꿈 본문
귀국 후 1년 동안 방송 공채를 준비하며 백수로 지냈다.
아버지께서 용돈으로 쓰라며 매 달 30만 원을 봉투에 넣어 주셨다.
민망하고 미안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카메라 실기까지만 가면 문제없이 합격할 거라고.
아나운서에 대한 꿈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2학년 국어 수업시간,
이름이 호명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의 본문을 읽어 내려갔다. 읽기를 마치자 선생님이 말했다.
"수정이는 나중에 아나운서를 하면 되겠다. 어쩜 그렇게 발음이 정확하니? 목소리도 예쁘고."
그때까지 막연하게 외교관을 꿈꾸고 있던 내게 아나운서는 꽤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직업군으로 다가왔다 (MBC 백지연 아나운서가 뉴스데스크로 주름잡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나운서를 하면 잘할 것 같다는 피드백은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받았다.
그래서 나는 졸업 후 공채 시험만 보면 당연히 아나운서가 될 거라 생각했다.
1년 동안 공채에 열 번 정도 지원해 모두 깔끔하게 2차 카메라 테스트에서 떨어졌다.
지인들은 도대체 왜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방송국 관계자들의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더 이상 백수로 지낼 수 없어 영어학원 강사에 지원했고 4년 동안 토익과 토플을 가르쳤다.
대체로 소규모 강의였기 때문에 내 민감성을 자극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영어를 무기로 갈만한 대학원을 알아보던 중 국제대학원이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국제기구나 한 번 가볼까 하는 심정으로 입학 원서를 준비하면서도
내 심중에는 이뤄보지 못한 꿈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존재했다.
아론 박사는 보통 부정적인 피드백이 민감하지 않은 사람에겐 주위를 환기시키는 정도의 영향을 준다면, 민감한 사람들에겐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을 준다고 설명한다 (p.22).
가끔 공채에 합격한 아나운서 중에 공채에 50번, 100번을 넘게 도전한 끝에 합격했다는 사람을 보면 '내가 끈기가 부족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역시나 민감한 나에겐 열 번도 백 번 못지않은 맷집이 필요했던 거다.

* 혹시 당신도 HSP인가요? 간혹 끈기가 없다는 오해를 받곤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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