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 본문

국제 이슈 콕콕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

水晶 2025. 4. 24. 02:41

첩보요원 같던 기네스 

 

난 미국인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다.

미국에서 다녔던 대학교에 인종 차별주의적 태도를 가진 철없는 백인 학생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숙사 방문을 열면 발 앞으로 쓰레기가 쏟아지고 생전 처음 보는 넘들이 면전에 대고 'pussycat'라고 불렀던 기억이 각인된 탓에 내게 미국인은 여전히 상대하기 껄끄러운 대상이다.

그중에 예외가 있다면 영국에서 만난 기네스 써들린

푸른 눈동자에 화사한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전형적인 미인인 기네스는 미국인을 답답해하는 미국인이었다 ^^

국가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를 방문했던 기네스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문화감수성을 키울 수 있던 듯했다.

머리 또한 비상해서 연구에 필요한 스와힐리어를 3개월 만에 마스터하는가 하면 지도 교수 없이 박사학위를 마무리했던 친구였다.

그래서 난 종종 기네스에게 "넌 미국 첩보원을 하면 딱 일 것 같아"라는 농담을 건네곤 했다.

 

기네스와 내가 졸업식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도날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이를 두고 기네스는 "Since the right person stayed still, the wrong one got the post" (해야 할 사람이 하지 않으니 엉뚱한 사람이 됐어)라는 말을 했다.

난 기네스의 그 말이 실로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날드 트럼프가 45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 그 어떤 매체나 전문가도 예측을 못했지만 사실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것부터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실제로 2015년 여름까지도 트럼프는 언론에서 지지율조차 신경 쓰지 않았던 후보이다.

 

공화당 내에서조차 외계인 취급을 받던 그가 어떻게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 자체에 있다. 

당시 공화당에서는 10명의 후보가 경선에 뛰어들었는데 비극은 다 고만고만한 인물이었다는 것

그나마 쿠바계 이민자 2세였던 마르코 루비오가 다크 호스로 떠올랐지만 준비되지 않은 후보라는 게 들통나면서 결국에는 본인의 고향인 플로리다에서마저 참패를 당하고 만다 (2025년 현재 미국의 국무장관).

 

Jeb Bush, Ben Carson, Chris Christie, Ted Cruz, Mike Huckabee and from bottom left, John Kasich, Rand Paul, Marco Rubio, Donald Trump and Scott Walker

 

여하튼 이 많은 사람들이 거의 경선 막바지까지 경쟁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포퓰리즘으로 확실하게 포지셔닝을 했던 트럼프는 30%정도의 지지율만으로도 대의원을 대거 확보하는 이변을 낳게 됐던 것이다.

 

설명을 덧붙이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시민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선거인단(electors)을 뽑지만, 공화당 경선에서 당원들은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후보는 대의원(delegates)을 배당받게 된다. 

 

공화당의 경우 주마다 대의원을 배당하는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승자독식 방식을 따르는 주가 꽤 많아서 지지율이 높지 않아도 1등만 하면 전체 대의원을 배당받을 수 있다. 바로 이 방법으로 트럼프는 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하는데 성공하면서 공화당 최종 후보가 됐던 것이다.

 

물론 여기엔 당원들이 트럼프 같은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지 않을 거라는 공화당 후보들의 오판이 한몫했지만 트럼프 외에 나머지 후보들이 경선 초기에 단일화를 했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졌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간질에 뛰어나고 선동적일수록 대통령 후보가 될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기네스나 나는 과연 언제쯤 겸손하고 청렴한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만나 볼 수 있을까...

 

 

'국제 이슈 콕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로코 군주제의 폐해  (0) 2025.04.30
영국의 브렉시트  (0) 2025.04.25
독일의 민주시민교육  (0) 2025.04.23
아이슬란드의 젠더 교육  (0) 2025.02.19
필터 버블 (Filter Bubble)  (0)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