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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슈 콕콕

터키-쿠르드족 갈등

水晶 2024. 9. 3. 22:02

쿠르드족의 독립을 꿈꾸는 뮤게

공강 시간에 사람이 많은 카페테리아는 가기 싫어서 빈 교실에 들어가 집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왔다.

진밤색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치고 가죽 재킷을 걸친 여학생은 동서양의 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목구비에 키까지 커서 무척이나 세련된 느낌이 났다.

그녀는 조용히 공강 시간을 때울 장소를 물색 중이라고 하면서 함께 있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물론"이라고 답하자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자리의 의자를 빼더니 나를 보고 뒤돌아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뮤게 일드림. 터키에서 왔다고 했다.

나는 뮤게에게 샌드위치 한 조각을 건넸다. 뮤게는 아침도 먹지 못해 배고팠는데 고맙다며 사랑스러운 미소와 함께 건네받았다.

우린 서로 왜 브래드포드(대학)까지 오게 됐는지를 물었는데 뮤게가 들려준 사연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녀에겐 쿠르드족의 독립을 위해 열아홉 살에 쿠르드 무장단체인 PKK에 자진 입대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오빠가 있었다. 뮤게는 친오빠처럼 총과 칼을 드는 대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평화학을 공부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터키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쿠르드 민족의 독립을 마음에 품고 있는 뮤게로 인해 나는 규모로 치면 중동에서 네 번째로 큰 민족이지만 한 번도 나라를 가져보지 못한 쿠르드 민족에 대한 연민을 가지게 되었다.


PKK의 게릴라전이 쿠르드족 입장에선 독립운동이지만 터키 정부 입장에선 영토를 앗아가려는 반정부 무장단체의 테러일 뿐이라 둘 사이의 무력 분쟁은 50년이 넘도록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 터키와 쿠르드족 간의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대부분 분쟁의 유래가 그렇듯 시간을 더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도 19세기 중반까지

유럽 동남부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통치하던 오스만(Ottoman) 제국이 몰락하면서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이라는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사이크스-피코(Sykes-Picot) 비밀 협정에 근거한 강대국들의 나눠먹기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민족이라는 특성은 간과된 채 강대국들의 필요에 의해 그려진 국경이었고 오스만 제국 하에선 그나마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쿠르드 민족은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고 발전시켜 온 쿠르드 민족이 민족적 정체성을 버리는 게 가능할까?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에서 늘 2등 시민으로 살아야 했던 서러움과 한이 쌓여간 시간만큼 독립에 대한 열망은 더 강렬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재와 다름없는 터키의 에드로안 정부에게 쿠르드 민족의 독립운동은 터키의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는 눈엣가시이자 시민들의 눈을 돌려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도 되는 터라 쿠르드 민족의 독립은 차치하고 평화적 공존을 위한 협상조차 요원하기만 하다. 

 

PKK 퇴치를 명분으로 이라크 북부에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터키(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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