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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파키스탄 갈등

水晶 2024. 8. 26. 22:31

친절왕 "샤"

런던에서 브래드포드까지 오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두 개나 되는 캐리어가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학교에 도착 신고를 하고 난 후 또다시 내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가고 있는데 약간의 언덕길에서 캐리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밀렸다.

"어어.." 하면서 캐리어가 이끄는 대로 미끄러지던 찰나 다부진 체격의 남학생이 달려와 캐리어를 잡아준 덕에 나의 뒷걸음질은 다행히 거기서 멈췄다.

연거푸 땡큐를 외친 후 캐리어를 건네받으려 하자 남학생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꽉 잡은 채 숙소가 어디냐며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웬만하면 사양했을 테지만 런던에서부터 낑낑대고 오느라 이미 힘이 다 빠졌던 나는 남학생의 친절을 거절하지 않았다.

찾아간 숙소는 아담한 가정집이었는데 주인아저씨께선 내게 하필이면 2층 방을 쓰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떠나지 않고 함께 있던 남학생은 기꺼이 그 커다란 캐리어를 번쩍 들어 좁은 계단을 올라 2층까지 올려다 주는 것으로 그의 친절을 마무리했다.

난 그에게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그의 이름을 다시 한번 물었다.

그의 이름은 샤. 파키스탄 말로 '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는 '친절왕'이었다.

 

샤와는 가끔 만나서 안부를 묻는 친구가 되었는데 그토록 다정하고 신사 같은 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건 바로 크리켓 경기에서 파키스탄과 인도가 붙을 경우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에게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크리켓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샤는 어려서 부모님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온 친구였다. 독실한 무슬림으로 샤의 친절은 그의 종교적 신념의 표출이기도 했다. 하지만 샤의 친절에서 인도인만은 예외였다. 인도에 대한 샤의 적대감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북한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매우 유사한 유래를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은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국가이다.

영국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재판장인 양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을 분리해 독립할 수 있도록 중재까지 했지만 사실 애초에 힌두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의 갈등을 심화시켜 놓은 장본인이 바로 영국이다.

 

유럽 제국들이 식민지를 통치하는데 사용했던 전략 중 하나가 바로 "Divide and Rule"이다. 내분을 조장해 단결을 저해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데 종교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었다 (그래서 종교는 21세기에도 이데올로기만큼이나 정치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도구이다).

영국도 예외 없이 식민 통치에 종교를 적극적으로 악용했는데 심지어 지역 선거에 무슬림과 힌두교인을 분리해 투표자 목록을 만들고 무슬림 정치인과 힌두교 정치인을 위한 의석을 따로 배분했다. 종교는 정치화되었고 힌두교인들과 무슬림들 간의 이권 다툼은 종종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지곤 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인도에서 발을 빼면서 친절하게도 친히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국경을 그어준다. 쉽고 빠른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분리는 인도와 파키스탄 두 국가에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상대국에 대한 적대감을 자양분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는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로 인해 70년이 지나도록 국경을 두고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인도와 파키스탄 시민들 사이에 감정의 골은 해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

친절하기 그지없던 샤가 인도에 대해서만은 친절하지 못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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