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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슈 콕콕

1979 이란 혁명

水晶 2024. 9. 2. 00:23

플랫메이트 '타야베'

브래드포드 대학이 직접 운영/관리하는 기숙사가 있긴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학교 근처에 위치한 민간 기숙사 중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Arkwright과 계약을 하고 짐을 옮겼다.

우리나라 고시텔과 비슷한 구조로 크기도 싱글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지만 가난한 유학생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

좁고 갑갑했던 기숙사에서 그래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던 이유는 이란에서 온 플랫메이트 타야베 덕분이었다.

신비로운 초록색 눈동자에 옅은 금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타야베는 마음까지 비단 같은 아가씨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따끈한 쌀밥이 먹고 싶지만 아직 밥솥이 없어서 못해 먹고 있다는 내 말에 냄비 밥을 지어 생선을 얹은 덮밥을 뚝딱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그날 먹었던 포슬포슬한 쌀밥과 고소한 생선 튀김의 맛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할 정도이다.

나보다 한 살 밖에 많지 않았지만 난 유학 생활 내내 타야베를 큰언니처럼 의지하고 따랐다.

 

타야베에 따르면 이란에 사는 여성들은 교육을 포함해 다른 중동 국가의 여성들이 꿈조차 꾸기 힘든 권리들을 그나마 누리고 있는 편인데 그건 모두 '이란 혁명' 덕분이라고 했다. 혁명 덕분에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다른 중동 국가들과 다르게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되고 여성 인권이 확대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들어선 이란 정부가 더 이상 미국의 꼭두각시이길 거부하자 미국이 이란을 미워하게 된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막상 이란 혁명에 대해 찾아보니 타야베의 설명과 다소 간극이 있었다. 

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란을 이슬람 공화국이라 선포하고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를 추구했다.

기혼 여성의 권리를 보장했던 가족 보호법은 무효화되었고 이슬람 복장과 행동이 강요되었다.

특히 혁명의 적이라 간주되는 자들은 즉각 분쇄되었다. 혁명 이전 군주제 안에서 행해지던 국가 폭력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한 폭력이 행사되었고 '반제국주의'가 국가 폭력의 명분이 되어주었다. 

 

지금은 미국과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가 됐지만 이란 혁명 이전만 해도 이란은 미국의 아군 중에 아군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1953년 이란 쿠데타가 미국 CIA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모사데그 정부가 이란 석유 국유화 운동을 벌이자 영국과 미국이 나선 것이다.

이 쿠데타로 인해 민주적인 절차로 수립된 모사데그 정부가 전복되고 팔레비 왕가의 모하마드 레자 샤가 왕으로 복귀하게 된다. 

 

샤의 통치 기간 동안 이란은 현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루긴 하지만 극심한 부의 편차로 인해 그 결실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반제국주의적 호소는 이란 시민들의 불만이 혁명으로 타오르는데 필요한 촉발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란의 마지막 왕 모하마드 레자 샤와 그의 아내 파라 디바

 

 

이란 혁명이 발발한 지 45년, 여전히 정치적 탄압과 인권 유린이 팽배하고 특히나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작금의 상황은 이란 혁명이 과연 성공한 혁명이었는지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피게 한다.

다만 확실한 건 타야베와 같이 젊은 세대들을 포함해 다수의 이란 시민들에게 이란 혁명은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 정권을 타도한 더없이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점이다.

이런 인식이 이란 정부의 정치적 세뇌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이란 시민들이 끊임없이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2022년, 이란 정부의 억압 정책에 맞서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이란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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