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수단 내전 (~2011) 본문
독실한 무슬림 모하메드
평화학과에는 아프리카 나라에서 유학을 온 학우들이 꽤 많았다.
대다수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온 공무원들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대부분 40대 후반의 중년 아저씨들이었다.
그중에 수단에서 온 모하메드 알다고라는 아저씨는 군인이었는데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인품도 훌륭했다.
대학원생 중에 가장 연장자였지만 어린 학우들에게 늘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고 누구든 깍듯하게 대했다.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모하메드는 시계가 오후 4시 45분을 가리키면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학교 근처에 있는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향했다.
모하메드에게 기도 시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우선순위였다.
모하메드를 만나기 전까진 딱히 이슬람교에 대해 아는 바도 없이 선입견만 가지고 있었다면 모하메드를 알게 된 후로는 알라를 믿든 예수를 믿든 제대로 믿으면 궁극에는 하나의 진리로 관통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신앙과 일상이 일치된 사람이었다.
모하메드는 특히 수단이 종교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부디 이제라도 (2011년 당시) 갓 독립한 남수단과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길 늘 기도한다고 했다.
종교는 분쟁의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단골 메뉴이다.
하지만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 분석해 들어가면 종교는 핑계나 구실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난다.
그건 남수단이 독립하기 전 수단 내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수단의 북부와 남부 간 분쟁의 원인으로 종교가 등장하는 이유는 북부에는 아랍계의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고 남부에는 아프리카계의 크리스천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분쟁 하나 없이 평화로운 지역은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다양한 부족들 사이에 자원을 두고 발생하는 지엽적인 분쟁이었을 뿐 종교 때문에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운 것은 아니었다.
북부와 남부 간 적대감의 심화는 영국이 이집트와 함께 수단을 공동 통치하기로 선포한 1899년부터 시작된다.
실제적인 통치는 영국이 했는데 영국은 수단에서도 "Divide and Rule" (분할 통치) 전략을 사용한다.
영국은 수단 시민들이 서로를 증오하도록 만들기 위해 수단의 북부 지역에만 대대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차별적인 사회경제발전정책을 실행한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한 북부의 오만과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남부의 분노가 충돌하기 시작했고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 1956년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50년이 넘도록 지난하게 이어졌던 내전은 2005년, 수단-남수단 간의 포괄적 평화협정(Comprehensive Peace Agreement)이 체결되면서 진정이 되었고, 몇 년 간의 준비를 통해 2011년, 남수단은 공식적으로 북부 수단에서 분리 독립해 193번째 신생 국가가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모하메드의 바람과는 다르게 수단과 남수단 사이에는 유전과 영토를 두고 여전히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수단은 남수단대로 수단은 수단대로 권력 투쟁으로 인해 내전의 피비린내를 다시금 맡고 있다.
과연 누가 종교가 내전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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