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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국이 되어가는 레바논

水晶 2024. 9. 7. 02:36

곰돌이 푸, 무스타파

 

기숙사 7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A호실에서 나오는 거대한 몸집의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머리까지 민둥머리여서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외모였지만 인상이 너무 온화하고 푸근한 바람에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멋쩍게 웃으며 'Hi'라고 인사를 건네자 남학생은 활짝 웃으며 'Hey'라고 받아쳤다.

통성명을 하고 난 후 남학생이 저음의 나긋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서 왔는지 물어도 되니?" 

"South Korea. 너는?"

"난 레바논 사람이야"

"레바논.. 이름은 들어봤는데.."

"유럽에 사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휴양지이지"

"그렇구나. 근데, 넌 전공이 뭐니?"

"평화학. 너는?"

"진짜? 나도야. 무슨 과정? 난 박사과정으로 왔어."

"오,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난 석사과정 학생이야. 얼굴을 봐선 교수를 하고 있게 생겼지? 하하"

 

천성이 착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무스타파가 그랬다. 기본적으로 삶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유도 있겠지만 무스타파가 영국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레바논이 아랍지역에서는 그나마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던 나라였다는 점이 그의 긍정적인 성격과 태도를 형성하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레바논은 이제 더 이상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가 아니다.

무스타파가 영국으로 유학을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튀니지에서 촉발된 아랍혁명의 쓰나미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훑고 지나가면서 아슬아슬했던 평온함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레바논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레바논은 오히려 다른 이유로 카오스가 된다.

 

바로 시리아 난민.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아랍의 독재 정권들이 시민들의 손에 하나하나 무너져가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권이다. 뒤를 봐주는 러시와 이란 덕분이었다. 

치열해지는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 시민들은 살길을 찾아 나서야 했고 국경의 절반이 시리아와 접해있는 레바논이 첫 번째 선택지가 된 건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했다. 시리아에서 들이닥치는 난민에 대해 레바논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혼란을 틈타 레바논에 기반을 둔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는 게 목표인 조직인만큼 레바논 남부에선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상호 공습이 이어지고 있고 수천 명의 피란민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는 산더미처럼 쌓인 국가 부채, 치솟는 물가, 실업률 증가와 같은 경제 위기로 레바논의 카오스를 증폭시키고 있다. 

2021년 이후 안부 이메일에 답이 없는 무스타파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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