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ce

빛과 영원의 시계방 본문

수정의 브런치 카페

빛과 영원의 시계방

水晶 2026. 4. 9. 06:42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해방감

작년 9월에 제출했던 논문이 6개월 만에 major revision(대대적 수정 ㅠㅠ)으로 돌아왔고 겨우겨우 수정해서 오늘 제출!

이전 같으면 학기 중엔 논문 작성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텐데, 내겐 여전히 어려운 영작을 대신해 주고, 며칠 전에 써놓았던 내용을 간단하게 브리핑까지 해주는 쳇GPT 덕분에 감히 수정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러다 진짜 AI가 인간의 지침이나 검토 없이도 완벽한 논문을 쓰게 될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소름..

 

공교롭게도 이번 달 참여연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어 볼 책이 인공지능과 타임슬립, 시뮬레이션 우주 등 다양한 과학이론을 접목한 SF소설집, '빛과 영원의 시계방'이었다.

책의 타이틀이 예뻐서 읽어보고 싶다고 투표했던 건데.. 이렇게 난해한 소설일 줄이야..

이번 달 독서모임 진행까지 맡았는데 첫 단편인 '공간서점'부터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난감했다.

혹시나 저자가 책에 대해 소개한 내용이 있지 않을까 싶어 검색했더니 휴우~ 정말 다행스럽게도 저자가 강연한 동영상이 존재했다.

나처럼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흠칫 놀라 뒤돌아 나오신 분들을 위해 정리해 보았다 ^^

 

 

빛과 영원의 시계방 김희선

 

* 공간서점

모티브 작가의 고향 원주에서 실제로 봤던 오래된 시계방, 과거 프랑스에서 제작을 시도했던 기압 운송선
기반 이론 바라이언 그린의 시간여행 개념, 휴 에버렛의 다세계 이론
내용 및 질문 시계방 지하에 존재하는 시간여행 통로를 통해 과거로 돌아간 아버지는 과거에 했던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결과를 가진 여러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 덕분에 살아남은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을 만나러 온다.

*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과거로 가고 싶은가, 미래로 가고 싶은가? 그 이유는?
* 다세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은 나에게 위안이 되는가, 아니면 더 큰 혼란을 가져오는가?

 

* 오리진

모티브 영화 매트릭스의 고양이
기반 이론 시뮬레이션 우주론, 시스템 오류(버그)
내용 및 질문 전원을 껐다 켜는 것만으로 우주 전체가 초기화되는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주인공은 전원을 끌지 말지 갈등에 빠진다.

* 만약 세상을 리셋 할 수 있는 폰을 손에 넣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여기서 리셋은 다른 사람의 기억뿐 만 아니라 나의 기억도 초기화된다는 의미)

 

* 달을 멈추다

모티브 월명사의 향가 제망매가
기반 이론 전뇌 에뮬레이션, 타임 슬립, 일반상대성이론 (절대적인 시간에 대한 부정)
내용 및 질문 생존이 어려워진 세상에서 불멸을 갈구하게 된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뇌에 담긴 의식을 서버에 업로딩하기에 이른다.

* 의식만 남아 존재하게 된다면 그 존재를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 꿈의 귀환

모티브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쿠바 미사일 위기, 핵전쟁 이후의 세계
기반 이론 시뮬레이션 우주론, 홀로그램 우주론
내용 및 질문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꿈을 분석하던 대규모 연구가 흐지부지 중단되고, 그 이유로 우리가 단지 그의 꿈 속에 존재하는 가상 인물일지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 우리가 만약 가상의 존재라 할지라도 삶은 여전히 의미를 가질까?

 

* 악몽

모티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서, ‘월든
기반 이론 가상현실, 뇌과학 (거짓 기억, 기억 조작)
내용 및 질문 과거의 사고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은 뇌의 특정 부위에 전기자극을 가해 인위적으로 기억을 조작하는 작업을 무한반복 중이다.

* 인간의 정체성에서 기억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 기억이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
* 과거의 트라우마를 지울 수 있다면 인간은 그만큼 행복해질까?

 

* 가깝게 우리는

모티브 파울 첼란의 시 (가깝게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극우단체 가스통 시위, YH 여공 사건
기반 이론 자동화
내용 및 질문 정부와 공장은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여공들을 억압하고 이들을 24시간 일하는 자동인형으로 교체하려 한다. 자동인형 제작법을 알아내기 위해 스위스로 파견됐던 시계공은 자신조차 인간이 아닌 자동인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 나는 깨어 있으려 노력하는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타인의 욕망과 사회적 강요에 휩쓸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모티브 영화 맨 인 블랙', 파독 광부
기반 이론 뇌과학 (거짓 기억, 기억 조작)
내용 및 질문 페널티킥 실축 이후 종적을 감췄던 국가대표 축구 선수 K는 자신이 사실은 광부 N이라고 주장하며 진짜 K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 온전히 사실에 기반한 기억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 기억이 왜곡된다면,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끝없는 우편배달부

모티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위를 계속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푸스,
라돈 침대를 수거하다 과로로 숨진 집배원
기반 이론 인공지능, 클립 가설 (초인공지능의 극단적인 효율 추구)
내용 및 질문 우편배달부가 세상의 비밀을 추적하다 사실은 전세계가 잘못 설계된 인공지능 시스템 속에서 모두 우편배달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우리는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며 살고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사회 시스템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존재인가?

 

 

기독교 교리에서 구원을 'already but not yet'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구원의 완성은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이뤄질 것으로 '아직' 미완이라는 개념이다.

20년 넘게 내세가 이미 도래했다는 기독교적 시간관을 가지고 살아온 터라 절대시간을 부정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수용하고 상상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실체가 아닐 수 있다는, 혹은 내 실체가 다른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나 다세계 이론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특히 인간의 몸을 버리고 의식만 남기는 전뇌에뮬레이션은 기괴하다는 느낌에 거부감마저 들었다.

몸에서 하루속히 해방되고 싶지만 그렇다고 의식(mind)만 남기는 인생은 절대 사절이다.

그렇게 영원히 살아서 뭘 하게?

 

 

'수정의 브런치 카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미오와 줄리엣  (0) 2025.10.31
나를 읽어주는 사람  (0) 2025.07.05
오늘이 첫날인 것처럼  (0) 2025.05.20
순차통역 면접 벼락치기  (0) 2025.04.05
내 생활의 중심  (0) 2024.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