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혹시 당신도 HSP? (20)
In Pace

나도 나의 민감성이 버거울 때가 있다"저기 또 트러블 메이커 오시네."'헐.. 내가 기숙사 직원들에게 트러블 메이커로 불리고 있다니..'기분이 언짢았지만 급한 불부터 꺼야 하는 상황이었다."화장실 팬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분명 방에 있는 것 같은데 불러도 나오질 않으니 당신들이 해결해 주면 좋겠어."기숙사는 오래전 방직 공장으로 쓰던 공간에 합판으로 방을 나누어 놓은 구조였다.당연히 벽간 소음이 대단했다.룸메이트가 바뀔 때마다 다양한 소음에 시달려야 했는데 이번엔 화장실 팬 소음이 문제였다.늘 연인을 불러와 노닥이던 룸메이트는 본인도 신경이 쓰였는지 화장실 팬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있었다.공부는 학교에서 한다고 해도 화장실 팬 소음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는 건 민감한 내게 무리였다..

에드워드를 처음 본 곳은 에이트리움이라 불리는 강당이었다.그곳엔 누구에게나 개방된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고 에드워드는 내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를 치고 있었다.피아노가 정면으로 보이는 소파에 앉아 듣고 있던 나는 연주가 끝나자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한국 사람인가요?""아니요, 홍콩에서 왔습니다" 그가 대답했다."그런데 이루마를 알고 있군요? 연주가 정말 훌륭해요.""감사합니다. 이루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예요.""녹음을 하고 싶은데 한 번 더 쳐줄 수 있나요?""물론입니다. 제 옆으로 앉으시겠어요?"이성에게 다가가는 것도, 이성이 다가오는 것도 불편했던 내겐 서른이 넘도록 딱히 로맨스라고 부를만한 경험이 없었다.그런 내게 홍콩에서 온 교환학생 에드워..

제니 언니를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되어간다.내가 대학교 3학년 때 경영학과 대학원생으로 온 언니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다르게 말은 느리고 차분했다.큰 밴을 소유하고 있던 언니는 사람들의 운전기사를 자처했고처음 미국에 와서 집을 구하지 못한 유학생들에게는 기껍게 언니의 거실을 내주었다.나는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언니가 좋았다.그런 언니를 내 인생에 꼭 잡아두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는데 바로 교회 청년들과 떠난 시카고 여행에서였다.처음 해본 장거리 여행이 무리였던지 나는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다.모두가 잠든 밤, 끙끙 앓고 있던 내 옆으로 언니가 살며시 다가와 이마에 물수건을 대주며 조용히 읊조렸다."내가 대신 아플 수 있으면 좋겠다.."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졸업 후 귀국을 해서도 언니와 연락이 끊기지..

의식적이고 인간적인 삶스물 여덟이 되던 해, 잠자리에 들면서 아침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영어강사로 일한 지 3년 차가 되던 해였다.하고 싶은 일이 너무 명확했던 게 원인이었을까나의 자아가 여전히 너무 컸던 게 원인이었을까방송만이 나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일이라 믿었기에방송일이 아닌 다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게 너무 슬펐다.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우울'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삶 깊숙이 들어왔다.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그러면서 만난 책이 헨리 나우웬의 '영성 수업(spiritual direction)'이었다.거기서 그는 신체적 결함, 불행한 가족관계, 이루지 못한 꿈.. 그 모든 세상의 고통 속에서 죽지..

귀국 후 1년 동안 방송 공채를 준비하며 백수로 지냈다.아버지께서 용돈으로 쓰라며 매 달 30만 원을 봉투에 넣어 주셨다.민망하고 미안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카메라 실기까지만 가면 문제없이 합격할 거라고.아나운서에 대한 꿈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중학교 2학년 국어 수업시간,이름이 호명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의 본문을 읽어 내려갔다. 읽기를 마치자 선생님이 말했다."수정이는 나중에 아나운서를 하면 되겠다. 어쩜 그렇게 발음이 정확하니? 목소리도 예쁘고."그때까지 막연하게 외교관을 꿈꾸고 있던 내게 아나운서는 꽤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직업군으로 다가왔다 (MBC 백지연 아나운서가 뉴스데스크로 주름잡고 있던 시절이었다).아나운서를 하면 잘할 것 같다는 피드백은 그 이후로도 ..

"아, 수정 씨는 연락이 쉽지 않네요..""통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이게 웬일이야. 연예인께서 오셨네, 하하"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또 그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청소년기에는 잘 몰랐다.그저 명절에 친척들이 모일라치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옆 골목 이모네로 도망치곤 했던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유학을 가서 혼자 살게 되면서 내가 '집콕'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혼자 소박하게 상을 차려 밥을 먹는 것도 좋았고, 도서관보다는 조용한 집에서 혼자 과제를 하는 것을 선호했다.매주 금요일 저녁, 교회 성경공부가 끝나면 언제나 친교 모임이 있었지만 (이 모임 때문에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사람도 다수였다) 나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성경공부가 마칠 시간 즈음이 되면 나는 이미 ..

어둡고 시끄러운 음악은 빼고어머니께서 기억하는 나는 말은 잘해도 노래는 하지 않았다.한참 동요를 따라 부르며 애교를 부려야 할 나이에도나는 그저 듣기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난 노래를 꽤나 잘하는 아이였다.유년 시절 음악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 중에도 선생들은 심심찮게 나를 불러내 노래를 시켰다.그럴 때면 나는 빼지 않고 교단 앞으로 나가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같은 곡으로 선생들의 기대에 부응했다.양희은 씨가 부른 노래들의 심오한 가사를 이해했다기보다 다이내믹한 멜로디를 좋아했던 것 같다.물론 그런 노래들이 가창 실력을 뽐내기에도 좋았고.그런 취향은 디즈니에서 인어공주를 필두로 애니메이션 걸작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나로 하여금 애니메이션 OST와 사랑에 빠지게 했고,장기자랑을 위한 나의 선..

경계선 긋기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민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아이였다.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이 싫지 않았다.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반장을 도맡아 했다.심지어 6학년 때는 전교회장으로 활동하기까지 했다.하지만 난 늘 친구들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고 있던 어린 나를 기억한다.친구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질까 우려하는 것 이상의 조바심이 있었다.혹여라도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나에 대해 뒷담화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그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지금 생각하면 참 피곤했을 법도 하지만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피곤한 줄도 모르고온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썼다.이영애 주연의 영화 '친절한..

플랜 우먼 전혀 꼼꼼한 성격이 아니어서 실수도 잦고손도 야무지지 않아서 물건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았다.그래서 스스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근데, 나의 완벽주의는 엉뚱한 곳에서 발현이 되었다.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여섯 살 수정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전 날 밤 색연필을 놓아두었던 곳에 색연필이 없으면 일어나자마자 짜증을 냈다고 한다.예측이 가능하지 않아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나는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불편해하는 것 중 하나가 지인들의 깜짝 방문이다.심지어 어린 수정이는 가까운 친구들의 예정 없는 방문도 달가워하지 않았다.초등학교 5학년 때 수두에 감염된 내가 걱정되어 집으로 방문한 친구들을 나는 보고 싶지 않다며 거의 쫓아내다시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