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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ce

트리하우스 카페"미리암, 학교 정문 앞에 있는 조그만 카페 가 본 적 있어?" 오전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는 길에 절친 뮤게가 물었다."학교 앞에 카페가 있어?""나도 어제 처음 가봤는데 수프가 끝내 줘.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곳 이래. 같이 가서 점심 먹을래?""이따 저녁에 가는 건 어때? 나 도서관에 들려야 하거든.""아, 진짜? 근데 카페가 점심시간에만 운영을 해. 가까우니까 후딱 먹고 가면 안 될까?"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 없어 뮤게를 따라나섰다. 카페는 실제로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는데 벽돌로 지어진 자그마한 크기의 건물이었다. 입구 오른쪽으로 나무 그림과 함께 "Treehouse Cafe"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하얀색으로 칠해진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탄성이 절로 나..

나빌라브래드포드 대학에서는 일 년에 한 번 International Day라는 행사가 열린다.워낙 다양한 국가에서 학생들이 유학을 오다 보니 각자의 문화를 알리고 서로 배우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목적인 듯했다.학생들은 저마다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본인이 가지고 있던 혹은 공수해 온 공예품을 전시해 보여주거나 전통 음식을 만들어 와서 팔기도 했다.천천히 둘러보는데 원형 모양의 예쁜 가죽 가방이 눈에 띄어 잠시 걸음을 멈췄다.화려한 자수가 놓인 자주색 비단옷을 입고 매대 옆에 서 있던 여성이 한 번 매 보라고 가방을 들어 내게 건네주었다. 매 보니 예쁘긴 했지만 크기가 좀 커서 마치 북을 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어떠냐고 물어보길래 느낀 바를 솔직히 말했더니 본인이 봐도 그래 보였는지 웃음을 터뜨렸다.통성명을..

토히드 교수님 "히익! 보고서에 참고문헌이 130개야? 도대체 이걸 언제 다 읽은 거야?""이 정도는 기본이지, 미리암. 하하"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토히드는 방글라데시 출신이었는데 학우들 사이에선 교수님이라고 불렸다.닥카(Dahka) 대학에서 교수로 이미 10년을 재직하고 유학을 온 친구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기말 보고서를 석사논문 수준으로 작성해 버리는 넘사벽 실력과 성실함 때문이기도 했다. 토히드는 그의 조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방글라데시가 1971년 독립한 시점에서 더 이상의 발전 없이 정체되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토히드의 말에 따르면 독립 영웅이었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Sheikh Mujibur Rahman)이 국부로 추대를 받으면서 그의 딸이자 (당시)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의 반민..

오늘의 말씀은 시편 32편 8절"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Our daily bread를 오디오로 들으면 기도까지 해주는데 내용이 아래와 같았다 (3분경).When we sense you leading us into unknown territory, would you please help us trust in you willingly, knowing that you will always with us and you know what's best for us.(주님께서 우리를 미지의 영역으로 이끄심을 느낄 때 당신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기꺼이 당신..

에메랄드 눈동자의 아이샤 영국 브래드포드 대학 1층에 마련되어 있던 국제학생을 위한 사무실에는 아이샤라는 아리따운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그녀를 처음 봤을 때 마치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실제로 보는 느낌이었다. 심리학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아이샤는 이름만 들어봤던 모로코 출신이었다. 백인보다 더 흰 살결에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서 의아했는데 모로코가 한 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무슬림이었던 아이샤는 언제나 차분한 색상의 히잡(머릿수건)을 쓰고 다녔다.누가 봐도 백인 같은 외모에 히잡을 착용하고 있으니 늘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려야 했지만 본인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히잡을 고수할 만큼 아이샤는 독실한 무슬림이었다. 아이샤를..

영국 신사 토마스 브래드포드 대학 학생회관이라 할 수 있는 에이트리움 1층엔 국제학생들을 위한 아지트가 마련되어 있었다.오리엔테이션 때 알게 된 이후 나는 주로 점심시간에 에이트리움 2층 카페테리아에서 오믈렛을 사가지고 가서 혼밥을 하는 장소로 애용했다.그날도 늘 먹던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탁자 맞은편에 정장을 깔끔하게 갖춰 입은 남성이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영화 킹스맨에나 나올 법한 차림을 하고 있어서 학생 같아 보이진 않았다.오믈렛이 담긴 용기의 뚜껑을 열자 남자가 특유의 영국식 발음으로 "That looks proper good!" 라며 말을 건네왔다.그의 이름은 토마스 펠릭스 크라이튼.스물여덟 살이었지만 대학 입학이 늦어져 이제 2학년이라고 했다.토마스는 점심시간에 와서 혼밥을 하고 있던 나를..

첩보요원 같던 기네스 난 미국인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다.미국에서 다녔던 대학교에 인종 차별주의적 태도를 가진 철없는 백인 학생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아침에 일어나 기숙사 방문을 열면 발 앞으로 쓰레기가 쏟아지고 생전 처음 보는 넘들이 면전에 대고 'pussycat'라고 불렀던 기억이 각인된 탓에 내게 미국인은 여전히 상대하기 껄끄러운 대상이다.그중에 예외가 있다면 영국에서 만난 기네스 써들린푸른 눈동자에 화사한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전형적인 미인인 기네스는 미국인을 답답해하는 미국인이었다 ^^국가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를 방문했던 기네스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문화감수성을 키울 수 있던 듯했다.머리 또한 비상해서 연구에 필요한 스와힐리어를 3개월 만에 마스터하는가 하면 지도 교수 ..

정의의 사자, 한스 독일에서 온 한스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나와 평화학과 친구들은 도서관 입구에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 근처로 모였다.생일 축하는 평화학과에서 의례 있는 일이었지만 '찐' 평화주의자인 한스에 대한 학우들의 애정은 각별했다.한스가 나타나자 우리는 목청껏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함박미소를 짓고 있던 한스는 노래가 끝나자 케이크에 꼽혀있던 촛불 위로 숨을 크게 불었다.네덜란드 출신의 노라가 케이크를 잘라보겠다고 나섰다.20명이 넘게 모여있던 까닭에 노라는 그리 크지 않은 케이크를 잘게 여러 조각으로 썰어야 했다. 플라스틱 칼이 케이크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부스러기가 우수수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한스가 옆에서 부지런히 오른손으로 부스러기를 쓸어 모으더니 테이블 가까이 대고 있던 왼손 위로..

구원의 옷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 61장 10절입니다."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저는 어려서부터 옷을 무척 좋아했는데요. 학창 시절, 어머니께서 저녁을 사 먹으라고 챙겨주시던 용돈을 모아 옷을 살 정도였으니까요.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내게 잘 어울리고 남이 보기에도 예쁜 옷을 입는 게 제겐 꽤나 중요한 일입니다.아마도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한 제 심리적, 정서적, 영적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고요. 사실 이런 제 상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사람들을 밀어내기 바쁘고, 속에서는 짜증이 일렁이고, 게으르기 짝이 없는 제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