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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ce
에메랄드 눈동자의 아이샤 영국 브래드포드 대학 1층에 마련되어 있던 국제학생을 위한 사무실에는 아이샤라는 아리따운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그녀를 처음 봤을 때 마치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실제로 보는 느낌이었다.심리학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아이샤는 이름만 들어봤던 모로코 출신이었다. 백인보다 더 흰 살결에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해서 의아했는데 모로코가 한 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무슬림이었던 아이샤는 언제나 차분한 색상의 히잡(머릿수건)을 쓰고 다녔다.누가 봐도 백인 같은 외모에 히잡을 착용하고 있으니 늘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려야 했지만 본인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히잡을 고수할 만큼 아이샤는 독실한 무슬림이었다. 아이샤를 알..
영국 신사 토마스 브래드포드 대학 학생회관이라 할 수 있는 에이트리움 1층엔 국제학생들을 위한 아지트가 마련되어 있었다.오리엔테이션 때 알게 된 이후 나는 주로 점심시간에 에이트리움 2층 카페테리아에서 오믈렛을 사가지고 가서 혼밥을 하는 장소로 애용했다.그날도 늘 먹던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탁자 맞은편에 정장을 깔끔하게 갖춰 입은 남성이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영화 킹스맨에나 나올 법한 차림을 하고 있어서 학생 같아 보이진 않았다.오믈렛이 담긴 용기의 뚜껑을 열자 남자가 특유의 영국식 발음으로 "That looks proper good!" 라며 말을 건네왔다.그의 이름은 토마스 펠릭스 크라이튼.스물여덟 살이었지만 대학 입학이 늦어져 이제 2학년이라고 했다.토마스는 점심시간에 와서 혼밥을 하고 있던 나를..
첩보요원 같던 기네스 난 미국인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다.미국에서 다녔던 대학교에 인종 차별주의적 태도를 가진 철없는 백인 학생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아침에 일어나 기숙사 방문을 열면 발 앞으로 쓰레기가 쏟아지고 생전 처음 보는 넘들이 면전에 대고 'pussycat'라고 불렀던 기억이 각인된 탓에 내게 미국인은 여전히 상대하기 껄끄러운 대상이다.그중에 예외가 있다면 영국에서 만난 기네스 써들린푸른 눈동자에 화사한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전형적인 미인인 기네스는 미국인을 답답해하는 미국인이었다 ^^국가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를 방문했던 기네스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문화감수성을 키울 수 있던 듯했다.머리 또한 비상해서 연구에 필요한 스와힐리어를 3개월 만에 마스터하는가 하면 지도 교수 ..
정의의 사자, 한스 독일에서 온 한스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나와 평화학과 친구들은 도서관 입구에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 근처로 모였다.생일 축하는 평화학과에서 의례 있는 일이었지만 '찐' 평화주의자인 한스에 대한 학우들의 애정은 각별했다.한스가 나타나자 우리는 목청껏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함박미소를 짓고 있던 한스는 노래가 끝나자 케이크에 꼽혀있던 촛불 위로 숨을 크게 불었다.네덜란드 출신의 노라가 케이크를 잘라보겠다고 나섰다.20명이 넘게 모여있던 까닭에 노라는 그리 크지 않은 케이크를 잘게 여러 조각으로 썰어야 했다. 플라스틱 칼이 케이크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부스러기가 우수수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한스가 옆에서 부지런히 오른손으로 부스러기를 쓸어 모으더니 테이블 가까이 대고 있던 왼손 위로..
구원의 옷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 61장 10절입니다."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저는 어려서부터 옷을 무척 좋아했는데요. 학창 시절, 어머니께서 저녁을 사 먹으라고 챙겨주시던 용돈을 모아 옷을 살 정도였으니까요.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내게 잘 어울리고 남이 보기에도 예쁜 옷을 입는 게 제겐 꽤나 중요한 일입니다.아마도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한 제 심리적, 정서적, 영적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고요. 사실 이런 제 상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사람들을 밀어내기 바쁘고, 속에서는 짜증이 일렁이고, 게으르기 짝이 없는 제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공공기관 국제협력 업무에 지원해 서류 전형이 통과됐다.문제는 면접에 순차통역이 있는 게 아닌가!영어로 일상대화를 하는데야 큰 문제가 없지만 통역은 완전히 다른 영역인데.. 이걸 2주 동안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싶었다. 우선 쳇GPT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유료버전을 결제하고 음성 서비스로 국제이슈에 대한 문장을 한국어로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쳇GPT가 제공하는 문장을 내가 영어로 말한 뒤 틀린 부분을 알려달라고 하니 연습이 되긴 했지만.. Uff ya.. 예상한 것보다 더 어려웠다.메모를 하는데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특히 적절한 단어가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였다.거기다 3만 원 대 유료버전은 음성 서비스에 시간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두 가지 방법을 추가했다. ..
보태니컬 아티스트 김은정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모사사진처럼 그리는 보태니컬 아트에는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수채화 느낌이 가미된 보태니컬 아트는 꽤 재미있다.작은 디테일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희열까지 느껴진다.
너튜브에서 BBC World를 구독하고 있는데 노화에 관련된 팟캐스트가 추천 영상으로 떴다.부쩍 늘어나는 흰머리로 노화의 징조를 느끼고 있던 터라 망설임 없이 클릭! 노화를 역행시킬만한 약이나 기술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 귀가 번쩍 뜨였던 내용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 진행자가 Andrew Steele 박사에게 안티에이징을 위해 하고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자 구강 위생이라고 답하는 부분이었다. 입속에 있는 염증이나 균들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지만 이를 닦는 게 이토록 중요할 줄이야! Mayo 클리닉에 따르면 구강 내 세균들이 치주 질환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심내막염이나 폐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최소 하루에 두 번, 2분 이상 양치질을 권하고 ..
다정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지만 대담하고 독립적인 여성대담하고 독립적이지만 다정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남성 아이들을 여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남자로 사회화를 시키는 게 아닌아이들이 고유한 성별적 특성들을 잘 간진한 채 특정 성별의 부족한 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 그래서 살아가면서 성별 때문에 스스로를 제약하지 않고, 또 다른 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좀 더 수월해지도록 돕는 교육이것이 실로 이상적인 젠더 교육의 방향 아닐까? 기쁘게도 오늘 시청한 BBC 다큐멘터리에서 그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다큐에 등장하는 아이슬란드의 Laufasborg 유치원은 성별 고정관념을 완화시키기 위해 소위 히얏틀리 (Hjalli method) 교육 방식을 택하고 있다. 아이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