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제 이슈 콕콕 (38)
In Pace

사건은 은모 교수의 통계수업에서 발생했다.국제기구의 문을 두드려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국제대학원에 입학했던 당시 나는 스물여덟이었다.수업 중에 어떤 내용에서 파생됐는지 기억은 없지만 교수가 여학생들만 골라서 나이를 물었다.내 차례가 됐을 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나이를 밝혔고 교수의 코멘트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목매달이네. 여자 나이 스물다섯 이하면 금메달, 스물여섯이면 은메달, 스물일곱이면 동메달, 스물여덟 이상이면 목매달. 껄껄껄.." 내 볼 양쪽에 붙어있는 귀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웃으며 받아 칠 여유도 없었지만 어떻게 화를 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난 은교수의 농담이 모욕적이라는 생각만 했지 젠더 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특히나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는 ..

박사과정 시절 운 좋게 일본 외무성 국제문제연구소 장학생으로 뽑혀 3개월 동안 방문연구원으로 일본에 머문 적이 있는데 내 인생의 황금기라 여겨질 정도로 행복했다 (심지어 박사논문 감사의 글에도 그렇게 적었다).다른 것보다 일본인들의 개인주의 문화가 뭐든 혼자 하는 게 편한 나랑 찰떡같이 잘 맞았다.특히 서로 간에 깍듯하게 예의를 지켜주는 문화 덕분에 실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가 거의 0에 수렴했던 시절이었다. 다만 조금 의아하게 여겨졌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당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산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바람에 WTO에 제소까지 되던 시절이었는데 웬일인지 일본 마켓에서는 후쿠시마산 농산물이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미국 시민들은 역시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래도 미국 언론의 예상처럼 박빙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완승을 거둘 줄이야.. 사실 가장 아연실색한 집단은 미국의 엘리트들이다. 미국 시민들이 또다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개탄하는 걸 보면 미국 엘리트 집단은 여전히 자국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시민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꿈꾸게 하고 싶었다면 바이든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을 먼저 해소했어야 했다.민주당에게 기회를 줬지만 제대로 서민들의 상대적 빈곤을 개선시키지 못했으니 누굴 탓하랴..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엇갈릴 운명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은 점이다.우선 트럼프는 푸틴을 딱히 싫어하지 않..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온라인 북클럽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라는 책이 올라왔길래 단숨에 읽었다.요지는 기술의 진보(혁신)가 언제나 모두의 삶을 개선시키고 풍요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오히려 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열악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가 새롭게 맞이하고 있는 AI 혁명에서 동일한 절차를 밟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굵직한 기술의 진보와 소득불평등 간의 관계가 어떤 양상을 보여왔는지 설명하길래 그래프를 찾아봤다 (난 한눈에 들어오는 도표가 좋다). 저자들의 말대로 2차 세계대전(WWII) 이후 경제선진국들의 소득불평등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3차 산업혁명으로 자동화가 급속도..

그동안 쳇GPT의 무료 버전만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해 보고 나서는 유료 버전을 결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 목소리가 수집되어 샘플링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지만 영어 말하기 연습 상대로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쩌랴.. 나는 그저 테크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업 윤리를 잘 지켜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지만 그 또한 덧없는 기대라는 걸 알고 있기에 가능하면 각국의 정부가 (유럽연합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규제와 단속을 잘해주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규제가 지나치면 혁신이 어렵다는 주장을 한다. 과연 그럴까?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규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규제로 인해 혁신의 속도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면 어느 정도의 규제가 적정 선일..

He is back.영화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처럼 트럼프가 미국 대선 속편으로 돌아왔다.Financial Times의 기사, "What makes Donald Trump irresistable" (도날드 트럼프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서 저자들은 트럼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He is a convicted felon, a conspiracist, a philanderer and a businessman who has lied about his wealth. He thinks America has been too soft on democratic allies, too hard on authoritarian rivals, and that immigrants are “spoiling” it ..

Is 2024 Really the Most Important Election in History?Democracy—and the global system—might not be so easily dismantled.foreignpolicy.com 최근 미디어에선 연일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뉴스와 견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특히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에 뛰어들게 되면서 해리스 혹은 트럼프가 만들어 갈 세상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세상이 될 거라는 이야기들을 한다.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게 될 경우 민주주의의 퇴행을 넘어 국제 시스템에 붕괴가 올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이에 대해 Foreign Policy 저널의 칼럼니스트 Michael Hirsh는 민주주의 체제나 국제 시스템이라는..

요즘 유네스코 아태교육원(APCEIU)에서 제공하는 "Regenerative Leadership and Inner Development Goals(IDGs)"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목표들(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대해서만 들어보고 연구했지 내면 개발을 위한 목표들(IDGs)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그동안 개인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어떻게 소개하고,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었는데.. 강의를 시청하면서 내 커리큘럼이 왜 효과적이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Regeneration(재생)은 Sustainability(지속가능성)을 넘어 개인과 사회, 환경을 회복시키는 것까지를 의미한다.출발은 그래서 나의..

우린 대만인이야평화학과에는 일본인 유학생들이 꽤 많았다.브래드포드 대학이 로터리 재단과 결연을 맺고 있어서 일본 로터리 재단의 후원을 받아 학부 교환학생이나 대학원생으로 진학해 오는 친구들이 매 학기 열 명 이상이었다.아시아인들끼리의 유대감 때문이었는지 일본인 유학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해인가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인 학부생들의 송별회를 해준다고 해서 참석했던 적이 있다.거기서 처음 보는 아시아계 남학생들을 만났는데 서남아시아 쪽은 아닌 것 같아서 물었다."혹시 중국에서 왔니?"그랬더니 남학생 두 명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합창을 했다."워우~ NO! 우린 대만인이야!""어.. 그랬구나.. 근데, 대만이 원래 중국 아니야?""무슨 소리야.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인 거 알고 있니?" 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