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80)
In Pace
쿠르드족의 독립을 꿈꾸는 뮤게공강 시간에 사람이 많은 카페테리아는 가기 싫어서 빈 교실에 들어가 집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문을 빼꼼 열고 들어왔다.진밤색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치고 가죽 재킷을 걸친 여학생은 동서양의 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목구비에 키까지 커서 무척이나 세련된 느낌이 났다.그녀는 조용히 공강 시간을 때울 장소를 물색 중이라고 하면서 함께 있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물론"이라고 답하자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자리의 의자를 빼더니 나를 보고 뒤돌아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뮤게 일드림. 터키에서 왔다고 했다.나는 뮤게에게 샌드위치 한 조각을 건넸다. 뮤게는 아침도 먹지 못해 배고팠는데 고맙다며 사랑스러운 미소와 함께 건네받았다.우린 서로 왜 브래..
플랫메이트 '타야베'브래드포드 대학이 직접 운영/관리하는 기숙사가 있긴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학교 근처에 위치한 민간 기숙사 중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Arkwright과 계약을 하고 짐을 옮겼다.우리나라 고시텔과 비슷한 구조로 크기도 싱글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지만 가난한 유학생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좁고 갑갑했던 기숙사에서 그래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던 이유는 이란에서 온 플랫메이트 타야베 덕분이었다.신비로운 초록색 눈동자에 옅은 금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타야베는 마음까지 비단 같은 아가씨였다.만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따끈한 쌀밥이 먹고 싶지만 아직 밥솥이 없어서 못해 먹고 있다는 내 말에 냄비 밥을 지어 생선을 얹은 덮밥을 뚝딱 만들어주었다...
아흘람의 소망난 우선 그녀의 나이에 놀랐다.적어도 30대 후반으로 보였던 아흘람은 27살이었다.아랍계 특유의 아름다운 곡선이 살아있는 얼굴이었지만 몸의 어딘가에서 보내오는 통증으로 표정은 늘 일그러져있었다.아흘람은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는 독일 NGO 단체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올 수 있었다고 했다.영국에 오기 전까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마련된 난민촌에서 생활했다던 아흘람은 영국 남자를 만나 교제하고 싶어 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영국 남자와 결혼해 시민권을 얻어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족들을 영국으로 초청해 함께 사는 게 소망이라고 했다.듣기에 다소 민망한 소망을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난민촌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그토록 영국 남자와 결혼을 갈망하는지 충..
친절왕 "샤"런던에서 브래드포드까지 오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두 개나 되는 캐리어가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학교에 도착 신고를 하고 난 후 또다시 내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가고 있는데 약간의 언덕길에서 캐리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밀렸다."어어.." 하면서 캐리어가 이끄는 대로 미끄러지던 찰나 다부진 체격의 남학생이 달려와 캐리어를 잡아준 덕에 나의 뒷걸음질은 다행히 거기서 멈췄다.연거푸 땡큐를 외친 후 캐리어를 건네받으려 하자 남학생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꽉 잡은 채 숙소가 어디냐며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웬만하면 사양했을 테지만 런던에서부터 낑낑대고 오느라 이미 힘이 다 빠졌던 나는 남학생의 친절을 거절하지 않았다.찾아간 숙소는 아담한 가정집이었는데 주인아저씨께선 내게..
2023년 11월, 유네스코에서 국가들은 '평화, 인권, 국제이해, 협력, 기본적 자유, 세계시민성,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교육 권고'를 채택한다. '평화, 인권,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교육 권고'로 짧게 지칭되는 이 권고는 약 50년 전, 국가들이 교육을 평화와 국제 이해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협력해 나갈 것을 약속한 '1974 권고'를 업데이트한 것이다. 이 권고에서 교육은 모든 사람들이 전 생애에 걸쳐 자신의 인격, 존엄성, 재능 및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는 과정으로 양도 불가능한 인권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인류가 전쟁과 폭력, 환경과 생물 다양성의 파괴, 불평등의 증가, 혐오 이념의 확산 등 전지구적 도전에 직면해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지구 공동체를 만들어가..
열병이 나서 몸져누우신 어머니께 악다구니를 쏟아냈다.오전에 50여분 걷기 운동을 하고 오시면 파김치가 되시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산책을 30분으로 줄이라고 아침마다 잔소리를 한 게 화근이었는지 열병이 나자 "네가 걷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병이 났다"라고 짜증을 내시는 게 아닌가!진짜 어이없고 황당해서 당신 스스로 몸을 혹사시켜 놓고서 왜 내 탓을 하시냐고 했더니 더 역정을 내셨다.지지 않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 내 방에 들어와 저녁까지 꼼짝을 하지 않았다. 편도체가 뇌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지 않도록 심호흡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좀처럼 화가 사그라지지 않았다.이토록 화를 나게 만드는 이도 어머니뿐이고..이렇게 화가 나는 경우도 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뿐이다. 어머니와 성향도 많이 다르고 나를 키우..
나의 MBTI는 INFJ. 그것도 극도의 내향성을 가진 INFJ이다.거기다 Highly Sensitive(HSP)하기까지 해서 인생이 이토록 버거운 게 아닐까 싶다. 사실 INFJ가 가지는 성향과 HSP의 특징이 다소 중첩되는 느낌이 있어서 찾아보니 HSP INFJ에 대한 글이 꽤 있는 게 아닌가!아래는 구글이 가장 먼저 추천해 준 "HSP이면서 INFJ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어떨까"라는 기사이다. HSP INFJ: A Guide to Understanding Highly Sensitive INFJsHSP INFJs are people with an INFJ personality type and a sensitive nervous system. This guide delves into their cha..
언제부터인지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노가리 사랑방이라는 채널을 알게 돼서 또 한참을 들었다. 영상을 함께 봐도 재미있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들을 만큼 내용 자체가 유익하진 않아서 ^^ 그냥 오디오로만 듣다가 잠이 들곤 했는데.. 최근에는 C. S. Lewis Insight라는 채널이 수면제 대체용 오디오가 되고 있다. 우선 성우분의 음성이 단단한 베이스톤이라 진짜 잠이 잘 온다 ㅎ 그리고 C. S. 루이스의 책들을 발췌해서 읽어주고 간간히 설명도 곁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유익할 수가 없다. 잠결에도 어떤 문장에 은혜가 돼서 종종 눈물이 나기도 하니 말이다. 어제 들었던 문장 중에 귀에 쏙 박혔던 문장은 바로"I have to belive no matter what happens ..
대학의 주인은 교육부가 아닌 학생21세기를 맞아 창의성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 사회는 복잡한 문제 해결과 대안 마련을 위해 늘 창의적인 인재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사회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창의적 인재의 육성을 강조하는 기능론적 관점을 어필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 창의성과 개인의 행복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모든 단계의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 함양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대학에서 소규모 토의수업이나 문제기반학습 등과 같이 학생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양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 대한민국 소재의 대학들은 교육부 평가에 얽매어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